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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오 마이 사이언스! - 과학주의의 종교성

과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에드워드 윌슨(사회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데닛(심리/과학철학자), 샘 해리스(신경과학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요 목표는 유일신 종교(기독교, 가톨릭, 이슬람교 등)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과학을 올려놓는 것이다. 종교의 잘못된 가르침을 폐기하고, 올바른 과학을 토대로 인간 사회의 도덕과 제도를 재편해야 한다고 그들은 강조한다. 예컨대, 인간의 본성은 신이 아닌 유전자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고(도킨스), 인간의 '자유의지'는 실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해리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으며, 인간 행위의 책임은 행위자 개인이 아닌 그 행위를 결정한 뇌, 유전자, 물리적 환경 등에 있다. 이는 과학(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의 언어로 종교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야심차고 대담한 시도이다.

 

이런 과학적 무신론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은 일견 당연하고, 또 건전해 보인다.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초자연적인 존재에 기댄 종교를 우리 삶의 토대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종교보다는 과학이 인간 존재에 대해 더 정확한 진실을 알려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종교의 대체재로 삼으려는 것은 사실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scienticism)'이다. 과학주의는 과학의 권위를 등에 업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모든 비물질적인 현상을 물리적인 작용의 결과물로 보는 물리주의(physicalism)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과학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은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이나 의지 같은 비물리적인 현상의 실재성을 부정한다. 그들이 보기에 이런 비물리적인 현상은 DNA나 뇌신경 회로의 물리화학적인 작용이 만들어 낸 부산물이며, 따라서 실재가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이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이들이 주로 동원하는 "과학"은 진화심리학과 뇌과학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바로 '과학주의'가 과학이 아닌 종교를 닮았다는 사실이다. 과학과 종교의 가장 큰 차이는 '절대성'의 유무이다. 유일신 종교에서 신은 절대적인 지식과 힘을 가진 존재고,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과학혁명 이전의 서양 인문주의자들 역시 이런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머나먼 고대에는 완벽한 지식이 존재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훼손되고 타락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의 의무는 지식의 타락을 막고 고대의 지식을 복원하는 것이지,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인문주의자들이 훈고학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지식 추구 방식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과학혁명가들이었다. 이들은 귀납적 방법, 즉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만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식이 진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참된 지식은 종교 경전이나 고대 문헌이 아닌 개개인의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다. 과학이 인류에게 준 선물은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 내용이 아니라, 지식을 획득하는 이 새로운 방식이다. 우리는 이를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부른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든 새로운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과학적 지식은 '잠정적'으로만 옳으며 언제든 반증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과학의 세계에서 절대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과학의 권위는 최대한 이용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이 담고 있는 중요한 교훈, 즉, 과학적 지식의 신뢰성은 '반증가능성'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다. 현대의 과학적 지식은 '과학주의' 혹은 '물리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할 만큼의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특히, 이들이 주로 의지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이나 뇌과학은 과학의 여러 분과 중에서도 가장 초보적인 분야에 속한다. 축적된 지식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탐구 방법 역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고, 지금 알고 있는 것도 머지않아 오류로 밝혀질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유행하는 진화심리학적 썰들을 검증되지 않은 혹은 검증될 수 없는 '그럴듯한 시나리오' 정도로 치부하며, 여러 신경과학자들은 '자유의지는 없다'는 해리스의 주장이 기대고 있는 벤저민 리벳의 실험에 결정적인 문제/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A Famous Argument Against Free Will Has Been Debunked). 그럼에도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과학적 지식/근거의 취약성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과학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은 절대적으로 옳으며, 적어도 언젠가는 과학을 통해 진실로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태도는 좀 더 확실한 지식에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하나의 믿음을 확고히 붙잡는 '신앙인의 태도'에 가깝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니체의 기독교 비판이 떠오른다. 니체는 오늘날의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이 타락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주요 혐의를 기독교를 제도 종교로 만든 예수의 제자들, 특히, 사도 바울에 둔다. 하나의 틀에 가둘 수 없는 예수의 가르침을 억지로 제도화/교리화하는 과정에서 예수의 본래 가르침이 완전히 왜곡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니체가 보기에 예수의 제자들, 그리고 그들의 후예인 기독교/가톨릭 지도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은 버리고, 예수의 권위를 이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과학적 무신론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과학의 권위를 이용하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과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나 '과학적 회의주의'는 가볍게 내다 버린다. 이들의 목표는 과학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권위를 이용해 종교 대신 인간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오 마이 갓" 대신에 "오 마이 사이언스"를 외치는 이들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그러니 오늘날의 종교 vs. 과학적 무신론의 싸움은 타락한 예수의 제자들과 타락한 과학 신봉자들의 싸움으로 봐야 한다. 서로 싸우고는 있지만 이들은 '신앙'이라는 본질적 속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로 친족관계에 있다. <사우스파크> "Oh My Science!"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와 창조론자 개리슨 선생의 부부 초상화가 바로 이런 아이러니를 풍자한다. 종교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이들의 싸움에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된다. '과학주의'는 또 하나의 종교일 뿐이다.

 

도킨스와 개리슨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