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희진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대통령이 해야할 말 ... "오염수 방류는 지구 침략이다" (2023.04.19)

안전 여부가 오염수 방류 기준이 되면 안 되는 이유 (2023.06.14)

 

정희진 씨가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해 최근 두 개의 칼럼을 썼다. 필자는 해당 분야에 비전문가이지만, 그렇다고 칼럼을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대중을 대상으로 칼럼을 쓰려면 최소한의 사실 확인 및 현상 이해를 밑바탕에 두고 있어야 함에도, 두 칼럼 모두 해당 주제와 관련한 과학적 상식/사실/논쟁을 아예 무시하고, 해당 이슈를 노골적으로 정치적 이슈로 몰고간다는 데 있다. 해당 이슈가 국제정치적인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적 논쟁 역시 올바른 과학적 근거 위에서 이뤄질 때만 생산적일 수 있다.

 

올해 4월 칼럼에서 정희진은 이렇게 말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인접국(한국, 중국, 러시아, 대만 등)의 문제가 아니다. 희석 방류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원전 오염수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후에 전개되어야 할 내용은 왜 희석 방류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불가능한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희진은 그럴 생각이 없다. 바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어이 없게도 북극의 빙하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대체 북극 빙하가 "후쿠시마 오염수"와 뭔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환경과 연관된 문제라면 탄소배출 문제든 삼중수소 배출 문제든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일까? 여하튼 아무 주제나 섞어 논의를 잡탕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평상시 글쓰기 습관은 여기서도 유감 없이 발휘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6월 칼럼에서 발견된다. 그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 여부와 관련된 과학적 논의를 비웃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염수를 처리한 뒤 삼중수소를 방류농도인 1ℓ당 1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한다면, 이 물 1ℓ를 마시더라도 내가 받는 실효 선량은 0.000027밀리시버트(mSv)”라며 이는 바나나 1개를 먹을 때 바나나에 포함된 칼륨-40 등에 의해 내가 받게 되는 실효선량 0.0001mSv의 약 4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이 말을 이해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오염수 문제가 과학 논쟁으로 가면, ‘오염수’라는 말부터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자들만의 논쟁이 될 것이다. 피해 지역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권위를 자랑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동원되는 것이다. 진리의 끝을 누가 알겠는가. 

여성학에 관해서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모자란다고 주장하던 필자가, 저 과학적 설명을 난해하다고 주장하는 건 그저 아이러니할 뿐이다. 처리된 오염수 1리터가 바나나 1개보다 더 적은 방사능량을 방출한다는 저 설명이 왜 어렵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베크렐' 등의 전문 용어가 쓰였지만, 이건 그냥 숫자 크기 비교가 가능한 초등학생 수준의 지능이면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삼중수소' 역시 간단한 인터넷 검색이면 어떤 물질인지 쉽게 확인 가능하다. 최소한의 과학적 지식은 그가 중시하는 '시민 교양'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삼중수소가 해양생물에 축적되고 그것이 인체에 유해한지에 관한 명확한 과학적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듯 보인다. 특히, 몇몇 해양 생물학자들이 유해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미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들 모두 삼중수소가 포함된 처리수를 정기적으로 바다로 방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삼중수소가 방출하는 방사능량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방사능독성(radiotoxicity)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기에 삼중수소가 포함된 물을 희석해서 바다로 방류해 왔던 것이다. 만약, 삼중수소 방출이 문제라면, "후쿠시마 오염수"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해 영국, 캐나다, 미국 등등 원전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의 삼중수소 해양 방출을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즉, "후쿠시마 오염수"만 문제를 삼을 과학적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해당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한 정희진의 칼럼은 필자의 과학적 몰상식과 정치적 편향성(반일, 반정부적 태도)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 이런 비과학적이고, 지적으로 무책임하며,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편향된 칼럼이 지면에 실리는 건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된 과학적 논의를 이해하고 싶다면, Scientific American에 실린 다음 칼럼이 도움이 될 것이다.

Is Fukushima Wastewater Release Safe? What the Science Says.

 

 

덧.

이글에 덧글을 단 분이 님비 문제를 얘기하길래 좀 이상해서 정희진 씨 칼럼을 다시 봤더니, 비슷한 얘기가 있었다.

남의 집 앞, 길거리, 공용 장소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당당하게 여러 차례 사전 공지를 해가면서 공포를 조성한 후에, “냄새가 안 나도록 약을 뿌렸다”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몰상식과 폭력이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이런 일은 몰상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오염수 방류는 전문적 지식(안전성)이나 국제법(합법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가. 안전하고 합법적이면 문제가 없는가.

재밌는 문단이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정희진 씨가 예로 든 사례는 '안전성'과 '합법성'을 담보한 사례가 아니라 그냥 불법이다. 저런 행위를 한 사람은 경범죄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이 맥락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처리한 사례를 제시하고, 그럼에도 그게 문제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불법인 사례를 제시한 후, "안전하고 합법적이면 문제가 없는가"라고 묻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논법인지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안드로메다 세상에선 저런걸 '논리'라고 쳐주는지도.

 

덧2.

서균렬, 강건욱 교수 토론을 보다가 알게 된 사실, 세슘과 삼중수소는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하여, 본문의 해당 내용을 수정함. 삼중수소가 어폐류에 축적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북태평양 조사단의 일부 해양생물학자들은 관련 주제에 대해 전문성이 없었던 듯 보임.

이와 별개로 두 교수의 토론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국내 담론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움이 됨.

https://www.youtube.com/watch?v=zWCQ5zwOmlM&t=1s